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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여사, 우리의 인연도 참으로 깊은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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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규원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10여년 만에 봉 여사가 찾아왔다. 내가 산중살이를 시작하기 전 읍내에서 단전호흡과 선체조를 가르치는 도장을 1년가량 운영할 때의 수강생이었다

 

그무렵 방송에서 아침마다 명상과 선체조를 지도했었고 내가 쓴 책이 시중에서 팔리던 때라 체조를 배우려는 사람은 멀리서도 찾아왔었다. 그 무렵의 인연으로 알게 된 봉 여사는 내가 도장을 접고 산속으로 들어오자 남편이 암에 걸려 공기가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면서 막무가내로 비어있는 내집 이층으로 부부가 이사를 하여 같이 살게 되었다.

 

천품이 순후한 두 내외가 이사를 온 뒤부터는 내 식생활이 확 달라졌다.

 

하루에 한끼만 먹는 내 일종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봉 여사는 굶으면 안 된다면서 아침저녁 시도 때도 없이 환자를 주기위한 영양 식단에 내 몫까지 얹어 매일 쟁반에 곱게 받혀 가지고 내려왔다. 모든 음식 재료는 유기농으로 만드니 재료값도 만만치 않을 터라 그러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한건물 위 아래층에서 5, 6년을 함께 살았으니 한  구처럼 정이 많이 들었다.

 

나는 대체로 점심을 먹은 후에는 산책을 하거나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하는데 봉여사랑 꽃집도 가고 도자기집도 같이 다니며 편안한 시간을 즐겼었다. 다행이 그 남편이 건강이 좋아져서 서울로 이사를 갔고 나는 다시 텅빈 위장의 상태로 살아가는 고적한 삶으로 돌아갔다. 서울로 이사하여 사업을 새로 시작한 남편이 스트레스 때문인지 건강이 나빠져서 투병 하다가 그만 세상을 떴다. 유난히도 금슬도 좋고 천품이 법이 없어도 살 사람 이었는데 하늘이 빨리 데려가 가슴이 아팠었다.

 

그리고 10여년, 봉 여사가 오래 만에 찾아온 것이다. 아들이 서울에서 유명한 식당을 경영하고 딸은 대학에서 강의도하니 살만해 졌으나 죽은 남편이 못내 그립다면서 쓸쓸히 웃는다. 나와 함께 살았던 그 시절이 바로 자기 인생의 꽃 시절이었다며 .나 역시 그 시절이 인생의 꽃 시절 이었지. 사람과 사람이 신뢰하며 정을 나누고 살기가 어려운 법인데 한없이 맑고 사람에게 지극한 봉 여사의 성품 탓에 단 한 번도 서로 서운한 말 한 번 주고받은 적 없이 살다 헤어졌으니 우리의 인연도 참으로 깊은 모양이었다.

 

모처럼 만나 지난날을 얘기하니 가족처럼 어떤 말을 해도 서로가 통한다

 

점심 뒤에 산새공방으로 가서 차와 한담을 나누고 지하철로 서울로 올려 보냈다.

 

서로 좋아 한다거나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언제 봐도 그냥 편하고 고운 마음의 봉여사가 행복하기를 돌아오는 내내 마음속 깊이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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