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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국 대통령님, 오시는 데 불편은 없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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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하나 되고

 

 강 기자는 새벽에 일어나 하늘을 보았다. 별이 유난히 반짝이는 맑고 청명한 오월의 날씨였다.
 “참 좋은 징조야!”
 강 기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판문점의 북쪽에 있는 통일각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이 있는 날이다. 그는 수행기자단에 포함되어 취재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 측에서는 한우리 국가안보실장과 통일부장관이 공식 수행원이었다. 북측에서는 당을 대표해서 최철해 정치국 상무위원이, 군을 대표해서는 황칠서 총정치국장이 참여하게 되어 있었다. 회담은 오전의 공식적인 회담과 오후의 정상간 비공식 양자회담, 그리고 저녁 만찬으로 이어지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그는 회담의 공식적인 의제는 현재 북한의 시위상황 관련 조치 내용, 북한 인민들의 인권개선 문제, 식량과 비료 등을 포함한 생필품의 지원 문제, 남북한 경협사업의 확대 문제, 국제적인 지원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 등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 기자의 관심은 비공식 회담의 의제였다.
 ‘비공식적인 양자 정상회담의 주제가 무엇일까?’
 

▲ 하정열     ©브레이크뉴스

강 기자가 며칠째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 청와대, 국정원과 통일부 등을 찔러보았으나, 아직까지도 오리무중이었다. 함께 참석한 D일보의 이 기자도 이 점이 몹시 궁금한 듯 만나는 사람에게 질문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는 지금 무척 불안하다. 정권과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김정은을 둘러싸고 있는 체제수호 세력도 흔들리고 있다. 개성지역의 시위는 잠재워졌지만, 불씨는 내부에서 활활 타고 있다. 따라서 회담의 주도권은 우리 대통령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조국 대통령이 주도권을 활용하여 김정은 제1비서를 평화통일의 구도 속에 끌어들이느냐가 회담의 성공여부와 연결될 것이다.’
 강 기자는 여기까지는 생각할 수 있는데, 그 다음 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 무척 뵙고 싶었습니다. 이조국 대통령님, 오시는 데 불편은 없으셨는지요?”


 김정은 제1비서는 서른 살이나 연상인 한국의 이조국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말했다. 그는 그동안 마음고생으로 인해서인지 몸무게가 많이 줄고 얼굴도 핼쑥해 보였다.
 “예! 저도 오늘을 무척 기다렸습니다. 제1비서님을 이렇게 뵙게 되니 참 좋습니다. 오늘 날씨가 이렇게 화창한 것은 하늘조차도 우리의 만남을 축하해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의 소중한 만남을 통해 그동안 실무자선에서 막혔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이곳 판문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장소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휴전협정이 조인이 되었지요. 지금도 이곳은 대결의 현장이면서 평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런 뜻 깊은 곳에서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한 간에도 좋은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지난 3월 남북특사가 만나 정상회담을 논의한 이후 회담장소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평양이나 서울, 혹은 제주도 보다는 이곳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저희 쪽 통일각으로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번 개성지역에서 시위가 발생하여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까하고 내심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시위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조국 대통령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조심스럽게 시위문제를 언급하였으나, 김정은 제1비서는 크게 유념하지 않고 바로 식량문제로 넘어갔다.
 “대통령님! 잘 아시겠지만 지금 저희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4년간의 흉작으로 삼시세끼를 해결하지 못하는 인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통 큰 결단을 내리셔서 많이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북한의 인민들도 바로 우리 동포지요. 우리는 언젠가는 함께 살아가야할 국민들이지요. 우리의 국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데 우리의 아픔이 있지요.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간단한 인사말과 덕담이 오간 후 회담은 바로 핵심주제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난달에 비료를 지원해주셔서 모내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20만 톤 규모를 추가로 지원해주신다면 밭농사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릿고개에 있는 저희 입장을 고려하셔서 후반기에 지원되도록 되어 있는 식량 20만 톤도 좀 앞당겨 지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또 인도적 지원과 관련된 다른 요구는 없으신지요? 의약품도 많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정은은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던 제의를 이 대통령이 호의적으로 받아주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의아해하면서도 감사함과 무한한 신뢰감을 느꼈다.
 “예, 부끄러운 일이지만 작년부터 장티푸스와 결핵이 창궐하여 지금도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양부족으로 소아 사망률이 급격히 높아져 걱정이 많습니다. 긴급구호약품을 충분히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시다면, 라면 등 식품을 더 지원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아직도 남북이산가족이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례적으로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제도화하시지요. 우리는 이 번 개성지역 시위가 평화롭게 해결된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특히 개성공단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북한의 헌법이 명시한대로 평화로운 시위와 인민들의 인권이 충분히 보장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북한 내부의 안정이 유지되기를 희망하지요. 제1비서님께서 그렇게 조치해주신다면, 우리 국민들은 저의 대북 및 통일정책을 대대적으로 지지해줄 것입니다.”
 “대통령님! 저도 우리 인민들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인민들의 인권과 평화적인 시위는 보장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산가족의 만남이 정례화 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에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만약 평화적인 시위가 보장되고 내부적인 안정이 유지된다면, 우리 기업들의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협조하겠습니다. 금년 안으로 그동안 합의한 사업에 대한 20억 달러의 투자를 정상적으로 집행하는데 앞장서겠습니다. 그리고 제1비서께서 추진하시고자 하는 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장관급회담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가능한 조기에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혹시 최철해 정치국 상무위원님이나 황칠서 총정치국장님께서는 하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이 대통령은 김 제1비서의 좌우에 앉아 지금까지 말없이 경청하고 있던 두 사람을 둘러보며 다정하게 물었다. 그들은 이 대통령과 연배가 비슷했다.
 “저희는 오늘 정상회담에 배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습니다. 여기서 결정되는 사항을 충심으로 이행하겠습니다.”
 최철해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말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두 시간 반 이상이 걸린 공식적인 회담이 끝난 후 기자 브리핑이 이어졌다. 강 기자는 김정은 제1비서에게 진정으로 평화적인 시위를 보장할 수 있는지와 평화통일을 원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앞으로 평화시위를 보장할 것이며, 두려운 일이나 평화통일의 길은 이미 열리기 시작했다고 대답했다. 강 기자는 합의사항을 확인한 후 “평화적 시위 보장, 통일의 길 열려” 제목의 기사를 타전했다.
 오찬이 끝나고 두 정상은 북한 측에서 준비한 소나무로 기념식수를 하고, “조국의 평화통일 염원”이라고 명기된 한국 측에서 준비한 기념석을 세웠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비공식 정상회담은 오후 6시까지 계속되었다. 그 후 계속된 두 시간 동안의 만찬에서는 서로가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강 기자는 손을 잡은 북한 기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비공식 회담은 만찬 이후에도 속개되어 밤늦게야 끝났다. 때로는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걱정하며, 때로는 함께 눈물을 흘린 가장 인간적인 회담이었다. 김 제1비서는 아버지와 같은 이 대통령의 포근한 인간성에 감동했다. 이 대통령은 아들과 같은 김 제1비서의 솔직함에 매료되었다.


 이 대통령은 주변 4국의 움직임을 자세히 설명했다. 북한이 어려움에 빠지면 중국이 국경을 건너 군사력을 투입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했다. 김정은 제1비서도 그 점을 특히 염려한다는 말을 했다. 이 대통령은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김정은 제1비서도 이 점에 동의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자세를 가져야 국제사회가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며 북한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제1비서도 조만간에 결단을 내릴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한반도의 평화를 해치고 있는 북한의 비상전투태세명령을 해제한다면, 김 제1비서가 원하는 추가적인 지원을 할 명분이 생길 것임을 강조했다. 김 제1비서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노라고 대답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들을 석방할 수 있다면, 한국이 일정 금액을 제공하며 모셔올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 제1비서는 실무검토를 시키겠노라고 답변했다. 이 대통령은 ‘통일헌법’을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김 제1비서는 양측의 책임 있는 전문가들로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역제안 했다. 김 제1비서는 유사시 친족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 대통령은 김 제1비서가 앞으로 인민들의 인권과 평화적인 시위를 보장하고,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노력한다면 한국의 국민들도 충분히 이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합의사항은 한국의 국회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항이 포함되어 있음으로 앞으로 두 정상이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평화통일선언문’을 준비해서 국제사회에 발표하자고 합의했다. 이를 위해 수시로 특사를 교환하여 양 정상 간의 입장을 조율하기로 했다. 양 측의 특사로는 지난 3월에 훌륭한 역할을 해낸 한우리 국가안보실장과 김정철 특별비서 체제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남북한 정상은 손을 꼭 잡고 이제 조국과 민족 앞에 한 점 부끄럼이 없도록 평화통일을 위한 역사적인 사명을 다해 나가자고 다짐했다.

 

 강 기자는 기사를 마무리 한 후 새벽 2시에야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했다는 설렘이 아직도 요동치고 있었다. 평생을 고대하던 통일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계속 귀전을 때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순간 정읍 현감을 지낸 이순신 장군의 고뇌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은 강 기자가 자란 동네에 있어, 학창시절 가끔 그곳에 들려 조국을 위해 백의종군을 하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 후 그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순신 장군의 위국헌신의 길을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며, 조국통일의 일념으로 평기자의 생활을 해왔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우국충정의 심정을 표현한 ‘한산도가’를 되뇌며, 밤을 새워 시 한 수를 지었다.


                  우리가 있다


                  조국이여!
                  걱정마라.
                  여기,
                  우리가 있다.

 

                 변화해야 산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김 제1비서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했다. 이조국 대통령의 그 너그러운 자태가 떠오르며 포근한 마음이 그리워졌다. ‘그래, 그는 믿을 만한 분이다. 그와 합의한 사항을 지키기 위해 이제 나부터 변해야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소원이었던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우선, 나부터 변해야 한다. 공화국 인민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나부터 변화해야 한다. 내가 변하고, 우리 가족이 변하고,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권력지도층이 변해야 한다.’ 생각이 그 곳에 미치자 그는 다음 날 아침 바로 가족회의를 소집하도록 지시했다.

 

 가족회의에는 부인 리설주, 여동생 김여정 비서실장과 그 남편, 형 김정철 특별비서와 그의 부인 등 6명이 참석했다. 김정은은 어제 정상회담 결과를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본인의 뜻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 하던 가족들은 김정은의 설명을 연신 고개를 끄떡이며 들었다.
 “위원장님 참 잘 되었습네다. 모든 합의내용이 좋지만, 특히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통일헌법과 통일준비위원회를 준비하기로 한 점에 대해 너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네다.”


 김정철이 각별히 조심하면서 먼저 공감하는 발언을 했다.
 “형!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우리끼리 있을 때는 앞으로는 형, 그리고 아우로 불러요.”
 김정은은 김정철의 손을 꼭 붙잡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김정철은 김정은이 갑자기 형으로 호칭하는 바람에 어리둥절했다. 김정은은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자리를 물려받아 제1비서가 된 이후 지금까지 공적인 자리는 물론이고, 사적인 자리에서도 김정철을 형이라고 불러 본 적이 없었다. 비서동지 혹은 특별비서동지로 호칭했다. 더 크게 놀란 것은 김정철의 부인이었다. 그는 시동생에게서 오늘처럼 친절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항상 경계를 하고 멀리서 접근을 차단하는 차가운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남편에게 형이라고 부르다니!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남한 대통령이 한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들이 우리의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으세요? 무엇을 믿고 우리가 무장해제를 해야 하나요?  핵무기를 보유한 우리가 이렇게 쉽게 양보해야 하나요? 최소한 그동안 우리가 주장해온 ‘연방제 통일방안’을 관철시켜 체제를 유지해야 하지 않나요?”


 김여정은 오빠가 한 말이 미덥지 않은 듯 속사포로 여러 의문을 강하게 제기했다.
 “지금 우리가 핵무기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핵무기가 이제는 도리어 공화국의 생존에 걸림돌이 되는구나. 이 순간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식량과 비료 및 생필품이라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것을 남쪽에서 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우리도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금년에 2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이냐! 그리고 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장할 명분은 없는데⋯⋯. 앞으로 더 생각해 보자구나.”
 “남한의 전직 대통령들이 과거에도 몇 차례 약속을 해놓고 어기지 않았나요? 그리고 평화통일이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나요? 군부의 반대는 어떻게 대처할거예요?”
 “나는 남쪽 이조국 대통령에게서 무한한 신뢰와 인간적인 포근함을 느꼈다. 그는 조국통일을 위한 철학과 민족을 위한 신념이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평생소원은 통일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이것을 이루어야 한다. 군부의 반대는 내가 나서서 설득하겠다. 그리고 형이 특사로서 남북한의 문제를 잘 조율하리라 믿는다.”
 “여보! 당신 생각이 옳은 것 같아요. 지난 4년간의 흉작과 국제적인 고립으로 이제 우리의 힘만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는 역부족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인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주는 것도 참 잘한 일 같아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주니 너무 고맙소.”


 김정은은 아내의 성원에 힘이 난 듯 했다.
 “당신은 스위스에서 유학하면서 인민들의 행복이 보장되는 좋은 사회를 몸소 체험했잖아요. 저도 남쪽에 응원 갔을 때, 불과 며칠 동안이지만, 우리보다는 삶의 질이 월등하고 행복해하는 남쪽 사회를 보았어요. 지금 우리 인민들 중에는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를 등지고 중국으로 탈북하고 있지요. 바로 우리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해요. 마침 남쪽 대통령이 당신을 믿고 함께 통일의 문을 열어가고 싶어 하니 적극적으로 나서세요.”
 리설주는 남편을 적극 응원하며 힘을 보탰다.
 “아우님! 나도 그렇게 결단한 것을 높이 평가합네다. 우리는 할아버지 때부터 약 80여 년을 이 나라를 통치해 왔습네다. 핵을 만들면 국가안보가 튼튼해지고 강성대국이 되리라 믿고 모든 역량을 거기에 소진했지요. 군사력을 강화하고 군을 내세워 선군정치를 하면 체제가 강화되리라고 생각했었지요. 이제는 그것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판명이 되었습네다. 아우님이 이제라도 그렇게 방향전환을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너무 훌륭한 조치 같습네다. 내가 아우님의 특사로서 우리 조국과 평화통일을 위해 남쪽과 협상을 잘 해나가겠습네다.”


 김정철은 아직도 아우라고 하기에는 멋쩍은 듯 아우님으로 호칭하며, 정상회담 결과를 높이 평가하고, 본인의 역할에 대해 신념을 표명했다.
 “형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힘이 나네요.”
 김정은은 고마운 눈빛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내일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국방위원회를 열어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신속하게 당의 정책방향을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네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큰 어려움이 없을 터이지만 국방위원회는 이의제기가 많을 터이니 잘 준비해야 되리라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빠들이 그렇게 판단한다면, 저도 최선을 다해 정은이 오빠를 도울 거예요.”
 김여정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른 참석자들은 말은 삼가고 있었지만, 연신 고개를 끄떡이며 김정은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제 정상회담과 오늘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공화국 정책으로 추진하겠습니다. 여기 있는 가족 모두가 함께 뒷받침해야 합니다.”

 

 그 다음날 오전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추인했다. 통일헌법과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드는데 합의하고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노동당 핵심 의사결정기구로, 상무위원은 김정은 로동당 제1비서와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건양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철해 정치국 상무위원과 황칠서 총정치국장 등 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김정은과 정상회담에서 동행했던 최철해 정치국 상무위원과 황칠서 총정치국장이 앞장서서 지지했다. 김건양은 김영남이 고령으로 직책수행이 불가능해지자 이를 받아 형식적인 국가수반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김정은의 얼굴마담의 역할을 하는데 불과하였음으로 정책결정에 무조건 동의했다.

 문제는 오후에 계획된 국방위원회에서 어떤 반론이 나오느냐에 있었다. 북한 사회주의헌법에서 규정한 국방위원회의 임무와 권한은 선군혁명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국가의 중요정책을 세우며, 국가의 전반적 무력과 국방건설사업을 지도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국방위원회는 위원장, 제1부위원장, 부위원장과 위원들로 구성하는데, 직속기관으로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무력부와 인민보안부를 통괄하고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이후 위원장은 공석이었으나, 제1부위원장은 김정은이 맡고 있었다. 문제는 부위원장 4명과 위원 6명을 포함해 10명 중 7명이 군 장성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군의 반발은 의외로 쉽게 마무리 되었다. 김정은은 정상회담의 결과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오전의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정상회담 내용을 추인했다고 발언했다.
 뒤이어 공군사령관과 해군사령관 등이 유일영도체제의 수호와 중국과의 유대강화를 내세워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군부 내 대표적인 중국통인 공군사령관은 북한은 남한보다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유사시 중국과의 연대를 추진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바로 주변국의 위협에 당면할 수 있으며, 대남전투태세를 약화시키면 정권과 체제수호에 문제가 있다.’고 발언했다. 국가안전보위부장은 평화적인 시위를 허용하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웠다. 다른 군 장성 출신의 국방위원들도 연방제 통일방안을 거론하며 일부 동요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를 잠재운 것은 김진성 총참모장이었다. 그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그동안의 업적을 내세운 후, 공화국 내부의 어려운 사정과 중국 등 주변국의 군사위협 등을 강조했다. 이제 인민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탄압할 명분은 없으며, 인민들의 인권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가 살길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준수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군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해오며 군 장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던 총참모장의 발언이라 동요하던 참석자들은 다시 잠잠해졌다. 중국과의 유대강화를 주장했던 공군사령관과 해군사령관도 침묵을 지켰다. 김진성은 만장일치로 이를 추인하자고 제안했고, 군 장성들은 내부의 불만을 더 이상 표출하지 못했다.
 김진성 총참모장은 회의 후 딸 김지혜의 얼굴을 떠 올렸다. 공식적인 석상에서 인민의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놀랬다. 그녀는 아직 병상에 있었으나, 퇴원하게 되면 기자가 되어 인민들의 인권 보호와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말해왔다. 김진성은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아직 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인민의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온 것이다.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계속> hjy20813@naver.com

 

*필자/하정열.시인. 화가. 예비역 소장. 북한학 박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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