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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섭씨는 최근 영어와 프랑스어의 언어전쟁을 다룬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는 저서를 펴냈다(책미래).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이 책의 저자는 지금부터 1,000년 전 브리튼 섬에서 고작 100만 명밖에 사용되지 않았던 영어가 어떻게 지금처럼 무려 15억 이상의 언어 사용자를 가진 국제 공용어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말하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어떻게 영원한 라이벌 프랑스어의 영향에서 벗어났는지 여러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언어의 교류만큼 문화적인 사건은 없다. 그런 점에서 중세 영국 왕들이 300년 이상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큰 문화적 사건이었다. 역사 여행은 흥미롭다.
특히 유럽의 중세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서유럽 역사의 전면에 자주 등장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의 패자 자리를 놓고 자주 충돌했는데, 그 경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이 1066년에 잉글랜드를 정복하는 역사적 사건에서 두 나라의 경쟁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경쟁 관계를 언어 전쟁이라는 돋보기로 보고 있다.
이 책은 영어가 지금처럼 국제 공용어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 어떤 질곡의 순간들을 지나왔는지 주요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 그리고 영어에 들어간 수많은 프랑스어 어휘들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저자는 양국의 복잡한 관계가 11세기 중반에 있었던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에서 비롯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당시 영국에는 앵글로-색슨 왕조가 들어서 있었는데, 윌리엄 공의 침략을 받아 프랑스 계통의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저자는 이 사건이 정치적인 사건인 동시에 문화적인 침략을 알리는 시발점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노르만 정복 이후 영국 왕들이 무려 333년 동안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사용하는 영국 왕실의 문장이 프랑스어로 쓰여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영어와 프랑스어의 애증 관계는 신선한 충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