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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계획 발표 이후, 불이 붙은 정치권의 공방은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불편해 보인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는 말은 진정한 역사의 정의(定義)라고 볼 수 없을 텐데도, 마치 정치인들은 이 말이 정의(定義)라고 굳이 믿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는 모양이다.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국사교과서 집필과정에서 역사의 왜곡이나 미화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에 대한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안목은 여전히 역사를 두고 다투는 정치인들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치가들이 자기정당화 수단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는 정의(定義)에 집착하여 역사의 왜곡을 정당시해 온 주체였다는 것이 그동안 역사가들의 진단이고 보면, 더 이상 역사를 두고 정치적 공방은 철회해야 할 것이다. 역사에 관한 한 정치인은 주체가 아니라, 다만 피사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럼 역사의 주체는 누구일까? 그건 다수의 일반민중이며, 역사가의 몫일 터이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사초(史草)의 영역은 王의 신분으로도 접근이 불가능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역사의 미화나 왜곡 여부를 따져본다는 것은 정치가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의 일부 검인정 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에서 이념성향에 대해 헌법적 가치 안에서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닐 터이나, 역사는 정치가의 성급한 요구대로 기술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때 군부독재 시대가 가고, 소위 문민시대를 맞아서 ‘역사 바로세우기’의 기치를 내걸고 불행했던 근현대사의 역사에서 일부 정치적 재단을 감행한 적이 있으나, 이 또한 후세 역사가의 판단에 넘겨주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 시대의 역사적 사실은 훗날 시대가치의 변화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정치가의 성급한 입장이 만세토록 유지되는 법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정쟁은 정치가들의 무의미한 소모전에 불과할 뿐이다.
정치가들은 오늘의 이 역사의 전장에서 철수하여 본연의 임무로 복귀하는 것이 그나마 더 이상의 과오를 줄이는 길일 것이다. 이참에 현재 역사연구의 일선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역사가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역사의 정의(定義)에 대해 논하면서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비판하지만, 우리의 역사가들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에 소홀한 점은 없는지 돌아봤으면 하는 것이다. 역사가의 입장에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에 동의하기 싫어하면서도, 우리의 고대사 부분에서 승자의 기록에만 안주한 채 소아적 사론에 옹벽을 치고 단물만 빨고 있는 것은 혹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일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안일하게 지내면서, 결국은 후세에 재평가되는 과정이 남은 근현대사에 대해 정치권이 무의미한 소모전에 매달려 지내는 사이에 중국이나 일본은 사료발굴과 연구에 매진하여 이미 엄연한 우리의 역사를 탈취하여 자기들 영역으로 끌어들일 욕심에 부정한 왜곡과 날조까지 자행함을 보면서도 아무런 반박논거도 찾지 못한 채 속수무책인 상황에 대해 느끼는 바는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도 덩달아 역사를 왜곡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연구하는 자세로 발굴하고 밝혀내서 우리의 역사적 논리를 풍부히 하고, 선진한 역사적 안목을 키운다면 그들이 과연 우리를 만만히 보고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단고기(桓檀古記)의 진위문제도 그렇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될 일이지, 알량한 역사지식을 가지고 스스로의 아상(我相)에 묶여서 확실한 논거나 연구적 성과도 없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심사로 논리도 부실한 억측으로 함부로 진위를 가리는 오만함을 보이는가?
역사가들 말대로 역사는 근거가 중요하다면, 역사적 단서가 나왔을 때 치열하게 발굴하고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단군(檀君)의 이야기가 단지 신화인지, 아니면 역사인지에 대해서도 역사가의 입장에서 충분히 연구된 바는 있는가? 단군께서 1900년을 살았다고 하는 내용에 대해 어찌해서 일언반구 증명의 언급이 없는가?
근래에 들어 개천절 행사에 대통령께서 참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의문해본 적은 있는가? 고명하신 역사가들께서는 작금(昨今)의 우리나라 역사의 현주소에 비탄의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정치가들의 정쟁에 휘말려 국정교과서 집필거부 서명운동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정치인과 흡사해 보인다. 내 눈에는. pysin1515@naver.com
*필자/박영신. 청와대 근무 전 공직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