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
사람이 대의(大義)를 위하여 귀중한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버릴 수 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하여, 신앙을 위하여 기꺼이 죽은 사람이 세상에는 존재 합니다. 그런데 그런 위인(偉人)의 뒤에는 어김없이 위대한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시모시자(是母是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1910년 1월 30일자 「대한매일신보」에서 ‘시모시자’ 라는 제목의 감탄기사를 수록한 바 있고, 만주 일일신문과 일본의 아사히신문에서도 이를 전재한 유명한 논설(論說)이라고 합니다.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 안중근 의사의 장한 의거로 국적(國賊)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하였습니다. 온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 거사(擧事)가 있은 지 5개월 후, 1910년 3월 26일 10시에 안 의사는 순국을 하게 됩니다. 안 의사 거사 후에 놀란 일본 조야(朝野)는 헌병과 순사를 동원하여 샅샅이 주변을 살핍니다.
이 때, 안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도 평양경찰서에 끌려가 여러 차례 심문을 받습니다. 조 여사는 태연자약한 자세로 말합니다.
“중근의 금 번 거사는 러일전쟁 이후 나라가 위국(危國) 지경에 들어가는 현상을 보고 위국(爲國) 헌신적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중근은 일상생활에서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가산을 쾌히 쾌척하였으며, 오직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다.”고 거침없이 설명합니다.
당시 심문하던 순사, 헌병들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찬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우리도 크게 놀랐거니와 그 모친 조 마리아의 위인 됨도 한국의 걸출한 인물이라고 중국과 일본에서 찬탄의 기사를 연이어 내보낸 바 있었습니다.
특히 사형집행을 앞둔 옥중 아들 안중근에게 쓴 조 마리아 여사의 편지는 많은 사람의 흉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賤婦)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그 후 1910년 3월 26일 안 의사는 서거하고 천하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1911년 중국의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발단도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손문(孫文)이 격문(檄文)을 돌렸습니다. “이천만 조선족의 젊은 청년이 경천동지할 위업을 이룩하였거늘 4억의 지나인이여 잠자는가, 죽었는가?”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신해혁명이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어떻습니까? 나라의 위기나 신앙의 위기를 당하여 과연 우리는 목숨을 초개처럼 던질 수 있을까요? 나라를 위하는 순국(殉國)이나 종교를 위한 순교(殉敎)는 범부(凡夫)나 중생(衆生)은 감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순국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입니다. 그리고 순교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자기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침이지요. 그러나 우리 원불교에서는 목숨을 버리지 않고 순국하고 순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 대각(大覺)을 이루신 후, 표준제자 9인과 함께 창생(蒼生)을 구원할 서원을 세우시고,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결의로 마지막 기도를 올린 결과 백지에 혈인(血印)이 나타났습니다.
소태산 부처님이 이를 보시고 ‘기도의 정성에 천지신명(天地神明)이 감응한 증거’라고 하셨지요. 그러면서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세계에 바친 몸이니, 순일(純一)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는 법문을 내리신 것을 ‘법인성사(法認聖事)’라고 합니다. 바로 이 법인성사의 정신으로 죽을 만큼 나라를 위하고, 신앙을 위하여 오롯이 이 한 몸 바치면 이것이 진정한 순국이고, 순교가 아닐까요?
우리민족에게는 안중근 의사가 있어서 구한말이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대한의 맥박이 끊기 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역사의식과 오롯한 자세는 두고두고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안 의사의 서거 111주기입니다. 삼가 추모의 념(念)으로 옷깃을 여밉니다. 우리 안 의사와 그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에게 추모의 분향을 올리면 좋겠습니다. 이것도 거룩한 순국, 순교 정신의 구현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