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제목부터 길다. 그럴 수밖에 없이 여권 후진국 사우디에서 12월 12일(현지시간)에 치른 지역의원 선거는 금세기의 가장 큰 여권운동의 백미였기 때문이다.
AP통신은 살마 빈트 히잡 알 오데이비의 메카 마드리카 의회에서 첫 당선 소식을 전하면서 그 녀의 유리창 깨기를 이렇게 요약했다.
“사우디의 여성 참정권은 상징적이다. 오늘은 사우디 여성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역사적인 날이다.”
워싱턴포스트도 “첫 투표를 행사한 여성들이 투표소 곳곳에서 눈믈을 흘리면 휴대폰으로 그 감격을 담는 모습에서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면서 사우디 여성 운동가 하툰 알 파시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 기사를 잊지 않고 게재했다.
비록 얼굴 없는 지방의원 의원이고,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치더라도 이슬람 원리주의의 변화에 대한 신호탄로서 그 가치는 지대하고 동시에 상징적인 사우디 여권의 변화로 간주해도 좋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성참정권 인정의 역사 ‘서프러제트(Suffragette)’라는 단어가 지닌 함축성을 그대로 인용해 12·12 사우디 여권 천장 뚫기는 사우디 건국 역사 83년에 길이 빛날 여권 후진국 사우디 사회적 변혁의 흐름이 되었다.
1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는 284개 지방의회에 979여 명의 여성 후보가 입후보했다. 살만 사우디 국왕은 13만여 명의 여성유권자를 위해 전국 1263개 개표소 가운데 424곳을 여성 전용 투표소로 개방했다.
그 결과 사우디 여성의원은 20명이나 당선되었다. 그냥 당선이 아니라 투표소 따로, 연설도 안 되고, 얼굴 없는 선거운동으로 이룩한 사우디 여권은 이제 사우디가 변혁의 한 가운데서 우먼파워 주체로의 등극을 의미한다. 투표권 행사 비율도 여자는 82%인 반면 남자는 44%로 좋은 대조를 이루면서.
그 흔한 자동차 운전도 동반자에 의해 이동하는 나라에서 지방의회 의원으로 예산과 집행과정을 체크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주역이 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사우디가 포함된 중동은 이슬람 원리주의 영향으로 1990년대 이후에야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기 시작했다.
카타르가 1999년 처음으로 여성 참정권을 부여했고, 바레인(2002년)과 오만(2003년), 쿠웨이트(2005년)와 아부다비(2006년) 등이 여성 참정권을 인정해서 실시하고 있다.
사우디 경우는 미나지역(MENA) 지역에 불고 있는 ‘아랍의 봄’으로 왕정이 압장서서 민심의 동요를 달래기 위해 선대 압둘라 국왕이 3차 지방의회 선거부터 여성 참정권 실시를 공약했던 것이 8년의 시간을 거쳐서 햇빛을 보게 되었다.
이를 승계한 살만 사우디 국왕은 저유가로 사우디 국민의 동요와 이반을 막기 위해 11월에는 남자 동반과 동의가 없어도 사우디 여성들은 혼자서 여권을 교부받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사우디를 이해하고 잘 아는 서구 언론인들의 시각은 사우디의 더딘 여권 참정권 행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세 가지 사례를 들어서 그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하나는 2011년 5월 15일 개교한 세계 최대 여자대학인 ‘누라 빈 압둘라만 공주 여자대학’ 은 그야말로 해비 급이다.
넓이 800만m2(서울대 캠퍼스의 6배)의 최신 캠퍼스를 짓는 데 3년의 공사기간과 약 5조8000억 원을 투자한 세계 최대를 기록한 그런 여성전용 대학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캠퍼스는 최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고, 22개 단과대학과 6개 의학전문대학, 그리고 병상 700개 규모의 대학병원과 1만2000명의 학생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도 완비했다.
이 캠퍼스를 거쳐 공부한 사우디 여자대학생들이 개교 4년 동안 그들의 지식과 세계관은 서구 교육을 받는 대학생과 비교해도 하등 손색이 없는 데 여권 신장의 목소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둘은 올해 1월 이승을 등진 선대 압둘아즈스 국왕 시절은 고유가로 사우디의 주가가 항상 상종가를 치고 있었다. 그만큼 국가재정이 넉넉하고 사우디에서 생산한 원유에 모두가 목을 걸었던 그 시절에 여권 후진국으로서 여성 유권자들이 숨을 죽이고 살았을까하는 의문점이다.
이를 이슬람 원리주의에서 해답을 찾는 부류도 있지만 사우디 왕실이 여성의 ‘절대 보호’가 ‘참정권 불허’를 잠재우게 했다는 데 이견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셋은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에서 이혼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급증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우디 법무부에 따르면 2014년 경우 사우디 이혼 건수는 3만3954건으로 2013년에 비해 30% 이상 증가하고 있다고 밝혀 서구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는 10쌍의 부부가 결혼하는 동안 4쌍은 이혼하고 있다는 통계나 다름이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는 것을 적극 장려하고 있지만 반면에 이혼은 극도로 금기시하는 데도 말이다.
사우디 이혼 성적표에는 여성의 약 80%가 먼저 제기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있다.
대체로 사우디 결혼은 남녀가 데이트조차 하지 않는 채 결혼하는 문화가 주된 원인이다. 실제로 사우디 이혼의 대부분이 결혼 후 1년 내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그 원인을 찾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사우디 여성들 대부분은 국비 장학생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대학생 시절을 보낸 부류가 많아 고급 여성신장 여건조성의 배경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들은 대학과 가정에서 그 많은 시간을 세계 문화에 빠진 것에다 SNS 시대의 주역답게 남편 불륜의 들통을 손쉽게 발견하는 수준의 정보미디어 수혜자가 되었다는 점을 추가시켰다.
바로 이러한 세 가지 사례는 여권 후진국 사우디가 이번 12·12 역사적 기념일을 맞아 여권 중진국을 거처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일은 그리 멀지 않을 터다.
그래서 <아부다비 통신>은 고의(?)로 칼럼 제목을 길게 잡아서 이런 정보를 통해 사우디 미래는 저유가 기조에도 국가재정 운영에 기우(杞憂)로서 당분간에 그칠 공산이 커지고 있음의 방증이 될 수밖에 없다. adimo@hanmail.net
*필자/임은모. 교수. 글로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