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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주민들 소득 통일초기에 급격상승 후 4년차에 약간 주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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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주민 갈등고조

 

 

그동안 통일에 크게 만족하던 남북한 주민들은 통일 4년차가 되면서 약간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근에 통일의 열기는 많이 식었고, 외국인의 북쪽지역 투자는 세계경제의 불황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었다.

 

▲ 하정열     ©브레이크뉴스

문제는 북쪽주민들의 소득이 통일초기에 급격히 상승한 후, 4년차에 약간 주춤해진데서 발생했다. 취업자들의 증가 속도가 약해진 것도 다른 요인의 하나였다. 북쪽지역 주민들의 소득은 남쪽에 비해 아직도 약 60%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취업률은 남북 주민이 거의 대등하였으나, 문제는 3D업종의 종사자가 북쪽에 훨씬 많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더욱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서울로 이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서울의 일자리는 통일 이전부터 들어와 있던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북쪽의 근로자들은 남쪽의 대기업 근로자들이 중소기업 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더 많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 그들은 임금을 인상하라는 요구를 하며 곳곳에서 시위를 했다.


남쪽의 주민들은 자기들이 북쪽주민들을 위해 부담하는 특별세가 공정하게 쓰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쪽주민들이 자기희생과 헌신은 약하면서, 공평한 대우를 앞세우고 있다는 데 불만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생산성은 그렇게 높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그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남쪽 주민들은 서울로 거주지를 옮긴 약 30여 만 명의 근로자들이 불완전 고용상태에서 시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몹시 불만이었다.

 

충돌은 광화문에서 발생했다. 북쪽주민들은 “일자리를 달라!,” “임금을 인상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극우보수단체들도 시청일대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라!,”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히 지켜라!” 등을 외치고 있었다. 극우보수단체 회원 수십 명이 광화문 시위현장을 찾아 “북쪽으로 돌아가 시위를 하라!”고 자극적인 발언을 하면서 충돌이 시작되었다. 말씨름은 몸싸움으로 번졌다. 경찰의 소극적인 초기대응으로 순식간에 양측에서 수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루머는 그 다음날부터 날개를 달고 북쪽지역을 날아다녔다. 경찰이 북쪽지역 주민들만 과도하게 통제해서 부상자가 더 발생했다는 소문은 확대 재생산되어 날개를 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주민들의 과도한 불평등의 문제로 끙끙 앓고 있던 북쪽주민들이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고, 그동안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던 중도성향의 주민들도 시위에 가담했다.


국민 대부분으로부터 높은 신뢰와 추앙을 받고 있는 이조국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국민선언을 하고 난 후에야 시위는 잠재워지기 시작했다. 김정철 부통령은 북쪽지역의 주요 시위현장을 일일이 찾아가서 정부가 노력하고 있는 실정을 하나하나 설명함으로서 신뢰를 되찾았다. 그러나 소득 불균형이 지속되는 한 불만이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었다. 단지 휴화산이 되어 잠복해 들어갔을 뿐이었다.<계속> hjy20813@naver.com

 

*필자/하정열.시인. 화가. 예비역 소장. 북한학 박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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