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겨레 장군은 지금도 몹시 아쉬운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통일 직후에 박 장군의 평양 사무실에 몰려가 차를 마시며 브리핑을 받았었지. 바로 엊그제 같은데 8년의 세월이 흘렀네. 내가 대학교를 마치고 뜬금없이 기자가 되겠다고 하자 어머님이 몹시 반대를 하셨었지. 그러나 이름이 기자였으니, 운명이 나에게 기자의 직책을 부여했다고 생각하네. 40여 년을 평기자로 생활하면서 많은 중요한 경험들을 했고, 남들은 평생 한건도 하기 힘들다는 특종기사를 백건 가까이 터트리기도 했지. 특히 통일전담 기자생활을 하면서 남북 간의 거의 모든 사건을 다루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네. 덕분에 북쪽 출신 며느리와 사위를 보기도 했지. 인생을 살면서 의미가 있었던 것은 평생을 염원하던 통일을 볼 수 있었고, 조그만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는 것이지. 지금 돌아봐도 멍청하리만치 사명감에 불타는 생활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 그리고 항상 어려웠던 시기에 좋은 정보도 주고 힘을 실어준 친구들이 있어 참 행복한 인생이었던 같네. 인생길을 여기까지 함께 해주어 무척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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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기자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는 오빠들! 저도 한마디 해도 되요?”
식혜를 가져오던 신 대표가 끼어들며 말했다. 모두가 박수로 청했다.
“나는 지금까지 노처녀로 살면서도 오빠들 덕분에 외로운지를 모르고 지냈어요. 그리고 오빠들의 통일을 향한 열정을 느끼면서 저도 몸이 달아오르고는 했었지요. 오빠들이야 말로 진정한 통일의 주역이라 생각해요. 오빠들과 함께 한 날들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오빠들 감사합니다.”
신 대표는 진심이 담긴 감사인사를 했다. 친구들은 모임 때 마다 정성을 다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준 신 대표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지금 통일된 우리 조국은 번영과 발전을 지속하고 있네. 이제 남은 과제는 G7을 넘어서서 일류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우리 조국이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핵심과제를 하나씩 발표하는 것으로 오늘 모임을 마무리 할까하네.”
강 기자가 친구들을 돌아보며 마지막 주제를 꺼냈다.
“나는 미래지향적인 시대정신을 창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황만주 차관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 Spirit of the Times이란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을 말하지. 즉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樣式 또는 이념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네.
통일 후 우리나라는 일류국가의 문턱에 서있네. ‘현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우리가 현시점에서 당연히 던져야할 질문이라고 보네. 우리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네. 이를 고민하지 않았고, 여기에 대한 국가차원의 담론이 없기 때문일세. 정신없이 사는 우리가 올바른 가치를 구현할 수 없듯이, 정신없이 사는 민족이나 국가는 의미 있는 민족정기나 국가사상을 정립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네.
시대정신을 포함한 문화적인 변화나 개혁은 최소한 10년 또는 세대 단위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네. 가치관, 의식과 관행 등을 포괄하는 문화의 경우에는 공식적인 법과 제도가 장기간에 걸쳐 습관화되면서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아가기 때문이지.
우리가 지향하는 일류국가에서 모든 국민은 누구나 애국심을 갖고 나라를 사랑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네.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동시에 국가를 지키며 주인으로 번영발전을 선도해야 할 것이네. 이를 위해 전 국민이 공감하며 동참할 수 있는 충·효·예의 한국적인 전통가치와 선비정신의 바탕 위에 세계화시대의 요구사항을 접목시킨 미래지향적인 시대정신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보네.
통일 조국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담론화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희망찬 일류국가’ 및 ‘행복한 일류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네. 여기에 추가하여 ‘자주’와 ‘자립’은 우리가 붙들고 있어야 할 담론화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시대정신은 우리나라의 전통과 사상을 토대로 세워진 하나의 건축물이지. 올바른 시대정신을 정립하는 것은 어떠한 일보다 선행되는 것으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신바람’의 재창출로 이것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네.”
“참 좋은 제안이라고 보내. 나는 시대정신에 덧붙여 견실한 제도의 정착을 중요한 요소라고 보내.”
박겨레 장군이 제도의 문제를 제기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동은 동기부여動機附與에 의해 결정되고, 동기부여는 결국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네. 통일 이후 지난 8년은 우리 사회가 본질과 토대를 바꾸는 형질전환의 시기였다고 보네. 이러한 사회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한민족의 꿈과 욕망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의 모습은 이런 변화 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가? 이런 변화는 제도화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준다고 생각하네.
행위규칙으로서의 제도는 다양한 내용을 갖고 있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하는 가치관, 문화와 관습 등 비공식적인 규칙에서부터 공식적인 법령에 이르기까지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인 행위규칙을 포함하고 있네. 국민들의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은 그 사회의 행동규칙인 제도를 고치는 작업이지. 즉 제도를 고치는 것은 개혁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고 보네. 즉 좋은 제도가 더 우수한 생산요소를 유인하기 때문에 일류국가로 발돋움하는데 필요한 생산성과 효율성은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네.
국가발전을 위한 제도개혁은 노력하는 국민과 집단들이 성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네. 즉 그들의 부담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네. 이러한 제도개혁을 ‘발전 친화적인 제도개혁’이라 할 수 있지. 통일조국이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제도개혁이 산재해 있네. 사회의 구석구석에 민주적 원리와 제도가 적용되어 사회체제의 전반적인 민주화가 심화되어야 할 것이네. 국민의식이 개혁되어 스스로 법을 지키고, 남의 권리를 인정하며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지. 정치제도는 국민의 의사를 보다 정확히 반영하고, 효율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고 보네.
제도개혁의 변화는 입법과 예산으로 나타나게 되지. 입법과 예산의 지원 없이는 새로운 제도는 공허한 이야기가 될 것이네.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가능성이 없지. 선진적인 정치세력과 정책세력이 서로 연대해야 일류화를 위한 제도개혁이 성공할 수 있지. 정치세력과 정책세력의 결합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네. 이들이 합작하여 일으키는 제도개혁이 의식개혁의 국민운동과 결합하여 나아가면 그것이 일류화운동이 될 것이고, 이러한 운동의 결실로 통일조선의 일류화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네.
국가전략가는 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국민의식의 변화와 국민과 함께하는 제도개선에도 높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일류국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국민과 제도의 선진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네. 우리 모두 좋은 제도를 만들고 이를 정착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세!”
성공적인 군사통합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른 박 장군은 감회가 새로운 듯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대정신과 제도의 개선은 우리가 일류국가로 도약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나는 여기에 덧붙여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외교를 강조하고 싶네.”
이대한 장관이 외교관 출신답게 외교의 문제를 들고 나왔다.
“한반도 주변의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은 모두 세계의 강대국이지. 당분간 우리나라의 국력은 군사력과 경제력의 지표에서 이들 국가들에 미치지 못할 것이네. 그들은 호시탐탐 우리를 엿보고 있지. 우리는 증진된 국가적 위상과 국력 기반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균형외교를 통한 역할확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보네. 통일조선은 모든 영역에서 국가이익을 추구하며 자주권을 확보하고 국가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외교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네. 즉 통일조국의 외교적 위상은 국가이익과 자주성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네.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확립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국가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영향력을 증진시켜야 하지.
통일조국의 외교는 한반도 정세를 더 높은 곳에서 멀리 내다보며, 오늘의 안보와 내일의 일류국가에 대비하는 통찰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네. 즉 통일조선은 외교와 안보 문제의 포괄적 해결에 동참하고, 때로는 문제해결을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고 보네. 앞으로 테러, WMD 반확산, 난민, 지역 안보문제 등 우리가 기여할 부분은 다양하지. 우선 그동안 다져진 기존 양자관계의 틀을 활용하면서 다자관계 외교를 강화하기 위해 적극 노력할 필요가 있네. 우리는 통일조국의 지정학적 여건을 고려하는 동시에 세계적 차원에서의 적절한 역할 모색을 시도해야 할 것이네.
국가가 외교를 수행함에 있어 예측 가능하도록 행동하고, 그를 통해 다른 나라의 신뢰를 얻는 것은 쉽지 않지. 외교란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보네. 통일조국은 국력에 걸맞도록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네. 국제원자력기구IAEA,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국력에 맞는 분담금을 지출하면서 각종 국제기구에 우리 한민족이 많이 근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네. 즉 일류국가로서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도록 외교역량을 강화해 나가야한다고 보네.
통일조국의 외교가 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지. 한반도와 주변 동아시아를 둘러싼 강대국의 전략의 바닥과 표면흐름, 성층권의 흐름의 방향과 속도 및 각 흐름 간의 상호작용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라고 생각하네.”
“세 친구의 좋은 제안에 100% 공감하면서, 나는 ‘정의로운 나라, 법을 지키는 국민’이라는 요소를 강조하고 싶네.”
감상웅 회장이 정의와 법을 강조하고 나섰다.
“10여 년 전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었지. 우리도 이제 사회 정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반증의 하나일 것이네. 그는 민주사회에서 시민들이 정의Justice와 공익Common Good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정치에서 도덕을 묻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네.
우리는 통일조국은 어때야 하는지, 즉 어떤 원리들이 공동체의 삶을 지배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보네. 통일조국이 추구하는 일류화를 위한 국민의 노력은 사실상 새로운 ‘국가정체성’과 ‘국민정체성’을 찾아가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평화통일이라는 국가과제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일류화라는 새로운 국가과제 앞에 서 있네. ‘과연 우리는 우리나라를 어떠한 문명국가로 만들어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네. 그런데 이 문제는 우리 국민이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고자 하는가, 우리에게 보람 있고 가치 있는 문명이란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지. 즉 통일조선이 일류시민들이 모여 사는 정의로운 선진문명국가를 창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고 보네.
이념과 가치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원칙이 없는 정치는 타락하고 붕괴한다고 보네. 미래 국가전략의 틀 속에서 원칙을 지키는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일세. 성숙하고 밝고 따뜻한 민주주의 사회란 사회정의가 살아 숨 쉬는 사회라고 볼 수 있지. 존 밀John S. Mill은 사회정의 혹은 분배정의分配正義에 대해 ‘사회는 동등한 권리를 갖는 사람들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며, 각자가 자기가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받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지. 즉 공익과 민주시민의 도덕적인 가치가 제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네.
이러한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법질서 유지를 위한 강제력도 중요하지. 통일조선의 경찰도 시위를 막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시국경찰이 아니라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치안경찰 위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네. 하지만 그 이전에 사회적 관습과 도덕적 규범의 확립이 더 중요하다고 보네. 오늘날 가치체계가 붕괴된 우리의 문제는 대부분 과거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도덕적 권위가 붕괴된 데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네. 특히 미래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강제력만으로 법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제 우리도 민주사회에 걸 맞는 새로운 권위를 창출하는 데 각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활양식이며 공동체 운영의 원리이지. 요람에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숙명적인 존재조건存在條件이지 않겠나. 따라서 공동체 생활의 전제조건이 되는 준법정신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네. 준법정신은 민주주의 체제유지를 위한 희생과 봉사정신이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서 준법정신을 강화해나갈 때 우리는 일류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네. 우리는 일류사회와 시민을 향한 세계시민으로서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능력을 구비해야 할 것이네. 물질적인 성장이 윤리적, 정신적, 문화적인 성숙으로 연결되어야 하지.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윤리의식이 없이는 나눔과 품격의 일류문화국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네.
우리는 대부분 바르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지. ‘의인대로야義人大路也’라고 맹자가 외쳤듯이 정과 의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지. 우리는 대의大義정신을 가지고 인생의 정도와 대도를 정정당당하게 걸어가는 늠름한 통일조선인이 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네. 우리가 정의로운 나라에 살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법을 지켜야 한다고 보네.”<계속> hjy20813@naver.com
*필자/하정열.시인. 화가. 예비역 소장. 북한학 박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