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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운명은 다 정해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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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법철     ©

어찌 인간만이 운명이 정해졌다고 할 것인가? 깨닫고 보면 삼라만상 두두물물(森羅萬象頭頭物物)이 모두 운명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다 정해진 것이다. 따라서 옛 성현들은 “세상만사(萬事)는 다 정해졌다. 인간들이 헛되이 바쁘게 움직일 뿐이다((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이라는 교훈을 주었으나, 인간이 애써 부인하고, 욕망으로 헛되이 바쁘게 움직이다 죽을 뿐이다.

 

나는 중생을 위해 노파심(老婆心)으로 거듭 강조한다. 다음의 한자 문장을 외우시기 바란다. “만사개유정 부생공자망(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 이 세상에 태어난 남녀의 인간치고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건강속에 백세장수를 바라지 않는 남녀가 있을까?

 

그러나 인간들은 아무리 부귀영화를 자나깨나 간절히 기도하고 원하고 행동해도 복(福)을 타고 태어나지 않는다면 기도의 소원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나는 주장한다.

 

하지만 옛말에 대부(大富)는 하늘에서 타고 나고, 소부(小富)는 근면(勤勉)에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면 소부는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보통 남녀들의 희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 깨어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새는 배롤 곪지 않다는 말도 인간에게도 깨달음을 주는 교훈이다.

 

수년전 나는 서울대 중환자실에 지인인 중환자를 문병 위로차 찾아간 적이 있다.

 

중환자실의 입구에는 상황판이 걸려 있다. 중환자의 숫자와 나이, 성별 등이 적힌 상황판을 보면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남녀들을 짐작할 수 가 있는데, 그 상황판에는 2세 짜리 아기와 7세짜리 아동, 10세의 소녀, 등 세상에 태어나 악행을 하지 않은 착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업보인지 생명의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또 여중생, 남중생, 여고 2학년짜리 학생도 생명의 불이 커져가고 있었다. 그 외 나이 먹은 남녀들도 닥쳐오는 죽음을 속수무책이듯 기다릴 뿐이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려면, 먼저 세찬 바람으로 소독을 하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게 정해진 순서였다. 어찌나 소독 바람이 세차게 나의 몸에 불어 닥치는지 나도 모르게 날아가지 않나 놀랐다. 내가 문병하는 지인을 찾아 다가가니 환자의 하체는 이미 죽음의 서곡으로 마비되어 있고, 말도 하지 못하고, 겨우 눈으로 반갑다는 신호를 보내더니 주루룩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중환자실에 가보면, 누구든지 인간의 운명은 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에는 노소(老少)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나와 서울 거리를 걸으며, 바쁘게 오가는 군중을 보며 “살아있는 것은 큰 복을 타고 난 것이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있고, 건강 속에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가족과 친구끼리 애인이나 맛있는 음식을 환담을 나누며 먹고, 마음에 드는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도 복을 타고난 남녀들이라 생각한다. 모든 남녀가 건강했을 때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예를 갖추어 대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인간들이 언제부터 신불(神佛)에게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지구는 인연에 의해 태양에서 튀어나와 하나의 불똥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불똥은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 공전하는 지구라는 행성으로 변했다. 불덩이인 지구를 식히기 위해 눈과 비가 내려 지표의 불을 끄고, 거죽의 땅위에 인연 따라 생명이 태어났다. 드디어 영장(靈長)인 인간이 태어 낳을 때, 인간은 눈에 비친 공포의 환경에 벌벌 떨어야 했다. 뜨거운 지구를 식히기 위해 내리는 빗속에 천둥번개와 벼락이 쳐 지구의 생명체를 공포에 빠뜨리게 한 것이다.

 

영장(靈長)인 인간의 남녀들도 끝없이 내리는 폭우와 천둥 번개, 벼락이 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중지하는 힘은 인간에게는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태앙과 지구를 존재하게 하는 전능한 신(神)이 존재한다고 믿고 신에게 기도한 것이 모든 종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종교는 자연이 주는 공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간들은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주위에서 남녀 인간들이 허무히 죽어 가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인간의 죽음에는 노소(老少)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남녀 인간들은 인간이 너무도 무력하고 나약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더욱 신에게 기도하는 습관이 늘어났다. 처음에 인간의 기도대상에는 자연대상이 신이었다. 태양, 달, 성진(星辰), 큰 산의 산신, 바다의 용신, 강하의 신, 큰 나무의 목신, 등 일체를 신으로 섬기고 공물을 바치고 기도했다.

 

그러나 인간이 제아무리 신에게 공물을 바치고 애타게 기도해도 인간은 자신이 타고난 정해진 운명을 살다 갈 뿐이라는 것을 인간은 훗날 깨달았다.

 

예컨대 전지전능한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에수님도, 우주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부처도, 전능한 알라신이 선택한 유일한 에언자라고 주장하는 마호멧도 그들은 정해진 운명 속에 살다가 죽어간 것을 오늘의 인간들은 깨달은 것이다.

 

바꿔 말해 우주의 정해진 운명에서 앞서 성인들도 초월하지 못하고, 육신은 죽어 백골이 진토가 된 것이다.

 

인간들은 성인들을 내세워 먹고 살기 위해서 성인은 영원히 죽지 않고 전지전능한 신통력을 행사하여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주재한다고 강변하고 헌금을 요구하는 버릇을 쉬지 않는다.

 

이제 깨달은 인간들은 새로운 종교를 찾아 나설 때가 되었다.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창세기에 매혹되었지만, 이제 인간들은 우주를 직접 살피는 깨달음에 와 있다. ‘허블 망원경’으로 인간들이 우주를 살펴본즉 현재는 1천억 개나 넘는 우리 태양계 같은 태양계가 존재한다고 학술지에 발표된 지 오래이다.

 

앞으로 태양계가 얼마나 더 많이 밝혀질 지는 미지수이다. 1천억 개가 넘는 태양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같은 행성이 태양계를 돌고 있다고 상상해보시라. 그 지구 안에 우리같은 인간들이 정해진 운명 속에 기도하며 살고 있다가 죽어간다는 것을 상상해보시라

 

분명한 것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되고 태양과 달과 무수한 별이 움직인다는 천동설(天動說)은 이제 한국의 소년소녀들도 믿지 않는다.

 

이제 인류는 지구는 태양을 줌심으로 돌고 도는 지동설(地動說)과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도는 작은 행성(行星)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간들은 확연히 깨달아 버렸다.

 

이제 천동설을 믿고, 쓴 창세기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진짜 우주의 진리를 담은 창세기를 다시 써야 하고, 새로운 성인은 새로운 말씀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모든 종교의 경전은 새로운 우주관으로 다시 쓰여 져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창세기를 주장하는 교회와 성당들은 신도들이 모이지 않고 폐업상태이다. 종교도 흥망성쇠의 운에 봉착한 것이다.

 

또 나는 지구는 우리 태양계에 생명체가 태어나 정해진 운명속에 살다가 죽어야 하는 동물농장 같은 곳이라 논평한다.

 

지구에서는 영원한 생명은 있을 수 없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세상이요, 수명의 장수와 요절, 비명횡사, 부귀영화가 정해진 세상이 즉 지구라고 나는 분석한다.

 

인간에게는 영원히 살 수 있고, 오직 고통이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우주에 어느 곳에 있을까? 불교에서는 서방(西方)쪽에 극락세계라는 국토가 있다고 가르치며, 극락세계에 태어나려는 기도와 발원, 수행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기독교, 천주교, 회교에서도 천당에 가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극락세계나 천당은 인간의 육신으로 갈 수 있는 세계는 아니다.

 

특별한 인공위성을 타고 가거나 아니면, 육신은 지구에 버리고, 영혼만이 갈 수 있을 뿐이다. 매일 죽음이 싫고 두려워 울고불고 영생을 말하고 기도를 해도 인간은 죽음에서 피할 수 없다. 또, 죽음은 노소(老少)를 떠나서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주위에 말 한마디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무력한 것이 인간들이다. 이 무력하고 나약한 남녀들이 울며불며 인연 따라 기도대상을 찾아 기도를 하지만, 결국 지구에 정해진 불변의 법도에서는 초월할 수는 없다.

 

나는 지구를 모든 생명이 살고 있는 지구열차 라고 생각한다. 지구열차는 누구의 조종인지, 태양을 중심으로 쉴새없이 돌고 있다. 지구열차는 너무 빠르게 회전하기 때문에 너무 빠른 시간이 흐르고, 따라서 지구열차의 승객들인 인간들도 빨리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구열차의 승객들인 인간에게는 수명에 요절, 비명횡사, 등이 예고 없이 닥치고, 흥망성쇠의 인연 따라 부귀영화도 사라지고 졸지에 죽거나 노숙자 신세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운명, 국가의 운명도 깨닫고 보면 다 지구열차의 법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구열차의 승객들은 너무 빠른 시간이 흐르는 지구를 떠나 영원히 시간이 흐르지 않는 우주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각오로 진력해야 한다. 지구열차에 만족하면 영원히 생사를 거듭하는 지구열차의 승객일 뿐이다.

 

끝으로, 나는 지구열차의 운명은 인간은 바꿀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간이 무슨 수로 지구가 태양계를 도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하지만 개인과 나라의 흥망에 개인과 국민의 고착된 생각이 변하게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으로 흥망을 바꿀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이던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인간은 항상 자신의 고착화 된 생각을 통찰하고, 개인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생각을 바꾸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고착화된 생각이 운명을 만들기 때문이다.

 

*필자/이법철. 스님. 시인. 이법철의 논단 대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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