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회동
맥도웰 케이시 한미연합사령관은 3월 8일부터 3일 동안 미국에 긴급 출장을 다녀왔다. 북한 상황이 상당히 위급하여 연합사령관이 한국을 비워도 되느냐는 논란이 있는 가운데 미국 국방부장관의 긴급호출명령이 있어 서둘러 다녀오게 되었다. 최근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 국방부에 상세히 보고하고, 필요한 지침을 직접 받았다. 미국 국무부차관과도 회동하여 유사시 대책에 대한 논의를 했다.
연합사령관은 한국에 복귀한 직후인 3월 12일 오후에 연합사령부 사령관실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참석자는 케이시 사령관과 조지 맥카더 참모장, 그리고 토마스 솔리건 작전참모부장 등 3명이었다.
“오늘 연합사 부사령관을 배제하고 우리 3명만 모인 것은 미국 국방부장관 지침의 수행방안에 대해 토의하고, 유사시 긴급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국방부장관님과 합참의장님은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이 증가하는 것에 무척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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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시 연합사령관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하며 두 사람을 둘러보았다. 연합사 부사령관을 제외시킨 것은 그가 한국인이어서 보안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한 케이시 연합사령관의 조치였다.
“그것은 우리와 같은 평가군요.”
솔리건 작전참모부장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님의 특별한 지침은 있으셨습니까?”
맥카더 참모장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소. 바로 그것 때문에 여러분을 부른 것이요. 오늘 토의사항은 1급 비밀에 준해 보안에 유의하시오.”
케이시 사령관은 엄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국방부장관님은 다음과 같은 일곱 개의 지침을 주셨습니다. 첫째, 앞으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은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처리할 것. 둘째, 한국군을 잘 통제하여 분쟁이나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할 것. 셋째, 북한이 핵무기 사용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노력할 것. 넷째, 중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극히 자제할 것. 다섯째, 한반도 통일은 미국의 국익에 큰 도움이 안 되니 가능한 분단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여섯째, 유사시 휴전선을 넘어가는 상황이 도래 시는 반드시 국방부장관의 추가지침을 받고, 한국군이 연합사령관의 통제 없이 휴전선을 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일곱째, 앞으로 ‘작전계획 5027’을 포함한 북한지역 수복 작전계획은 평양-원산 선까지만 회복하는 것을 전제로 발전시킬 것 등입니다. 국방부장관님의 의도와 내가 말하는 의미를 이해하겠소?”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지 그는 여기서 말을 멈추고 맥카더 참모장과 솔리건 작전참모부장을 돌아보았다.
“다른 것은 다 이해가 되는데, 일곱 번째 지침은 조금 이해가 안갑니다. 우리 ‘작전계획 5027’에는 유사시 훨씬 북방까지 회복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까?”
솔리건 작전참모부장이 먼저 이의를 제기했다.
“그렇소. 그렇지만 우리가 더 북방으로 진입 시에는 과거 한국전쟁에서처럼 중국이 개입할 것을 우려한 조치요.”
“그러면 한국군과 한국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맥카더 참모장도 의아하다는 듯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서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지침을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상부에서는 우리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중국을 자극하는 일이 발생할까 제일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국군은 우리가 작전통제를 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고, 다만 한국국민을 설득하는 것은 당시 상황에 맞추어 설명하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케이시 사령관은 동의를 구하듯 맥카더 참모장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모든 작전계획을 수정해야 하는데, 한국군에 보안유지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솔리건 작전참모부장이 지침은 이해가 되나, 실천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바로 그래서 오늘 우리만 모여 토의하는 것 아니요. 모든 작전계획은 수정하지 말고 그대로 두시오. 그리고 극비리에 예비계획을 수립하여 유사시에 대비토록 하시오. 국무부에서는 중국이 북한문제에 가능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도록 협상해나갈 예정이요.”
케이시 연합사령관은 단호하게 말했다.
“중국은 북한지역을 ‘순치脣齒관계’로 표현하고, 만주지역에 대한 완충지역으로 보고 있는데, 쉽게 우리의 의지를 수용할 수 있을까요?”
맥카더 참모장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그 점 때문에 평양과 원산선 이북으로 진출하지 말라는 지침이 포함된 것입니다. 국무부에서는 중국과 이 점을 분명히 하면서 앞으로 협상을 해 나갈 것이요.”
케이시 연합사령관이 매우 강한 톤으로 말했다.
“한국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 등 한국 측에는 어느 선까지 알려주실 것입니까?”
솔리건 작전참모부장은 본인도 한국군 합참의 작전본부장 등과 협조할 사항을 고려하여 의문 나는 사항을 질문했다.
“오늘 이 사항은 처음에 강조한대로 극비사항이오. 한국군에는 그 누구에게도 새어 나가서는 안 되오. 따라서 참모장과 작전참모부장은 미군 측 과장 한 두 명을 데리고 예비계획을 수립하여 3월 18일까지 보고하시오.”
케이시 연합사령관은 극비사항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보고할 날짜까지도 명확히 지시했다.
강 기자는 케이시 연합사령관이 한국에 있어야 할 중요한 시점에서 갑자기 미국에 호출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미국의 특파원에게 연합사령관의 미국 체류 간의 세부일정과 특별한 사항이 있는지 여부를 파악해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 국방부장관과 국무부차관을 만난 것은 확실한데 무슨 일인지 파악이 안 된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케이시 연합사령관이 한국에 도착한 후 그의 언동과 연합사령부의 동태를 확인하였으나, 그저 조용할 따름이었다.
그는 박겨레 장군과 이대한 외교부 정책기획관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 쪽에서도 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연락이 왔다. 통상 연합사령관이 미국에 다녀오면 특이사항에 대해서 한국 국방부장관이나 합참의장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번 방문 후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응답이었다. 서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앞으로 더 파악하기로 했다.<계속> hjy20813@naver.com
*필자/하정열.시인. 화가. 예비역 소장.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