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남선녀
“아유! 멋지기도 해라! 저 선남선녀를 좀 보세요.”
“신랑이 김일성대학을 나와서 주체사상을 가르치던 교수였다나 봐요?”
“아니 그래요! 지금은 무얼 한데요?”
“지금은 여행사 사장을 한다나 봐요.”
“저 아름다운 신부는 무얼 한데요?”
“신부는 북한대학원대학교를 나와서 지금은 평양의 미국총영사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기 손잡고 들어오는 신부의 아버지가 영원한 평기자인 강 기자님이라면서요!”
“평화통일 하나에 목숨을 걸고 수십 년을 살아왔다고 들었어요. 통일 후에는 지금까지 H신문사의 평양지국장을 한다나 봐요.”
“그래서 통일기념일인 오늘 결혼식을 하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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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화와 김정식의 결혼식은 통일 5년차가 된 통일의 날에 모란봉예식장에서 거행되었다. 강선화와 김정식은 처음에는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다투다 헤어졌다. 김정식은 통일된 조국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우선 자신이 가르치던 주체사상 과목을 없앤 데 대해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김정식은 자기가 가르쳤던 주체사상이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을 받아들임으로서 서로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통일조선에 대해 기여할 사항을 이야기 했고, 서로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조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강선화의 부모는 김정식을 쉽게 받아들였으나, 김정식의 부모는 강선화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다. 그들은 김정식이 교수직을 그만두고 여행사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무척 불만이었다. 김정식의 아버지는 노동당의 이데올로기를 담당했던 핵심간부로서 과거 북쪽에서 차관급인 부부장의 직책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도 노동당의 이데올로기와 정신을 이어받아 살기를 바랐다. 따라서 김정은 제1비서가 남쪽과 평화통일을 추진하는데도 마음속으로 반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한동네에 사는 노동당 동료의 딸을 며느리 감으로 점찍어 놓고 있었다.
“자네가 우리 정식이가 사랑한다는 강선화씨인가? 이렇게 오지 않아도 될 일인데??.”
“예! 아버님, 그리고 저도 정식씨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승낙해주세요.”
“우리는 서로 출신과 성분이 다른 가족인데 어떻게 결혼해서 행복할 수 있겠나? 나는 이쯤해서 서로 헤어지기를 바라네.”
“아버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출신과 성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이해하고 사랑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니 출신과 성분이 중요하지 않다면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니야! 서로가 격이 맞아야지. 성분이 틀려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지??. 나는 이 결혼을 승낙할 수 없네.”
“아니, 여보! 내가 보니 예쁘고, 참하고, 똑똑한데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성분을 너무 따지지 말고 며느리로 받아들입시다.”
강선화를 지켜보던 김정식의 어머니가 나서며 강선화 편을 들었다.
“아니, 이 여편네가! 공화국이 무너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리의 사상을 포기하려고 그래. 쯧쯧.”
“아버님, 이 나라는 무너진 게 아니고 다시 태어난 거예요. 누가 누구를 무너뜨린 게 아니고, 서로 손잡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거예요. 우리는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게 아니고, 서로가 하나가 되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우리의 사상과 남의 사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모두가 존중받고 잘사는 일류국가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자네 말은 청산유수처럼 잘 하는구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이 지역의 풍습이 중요하듯 우리의 사상도 중요하지. 이 결혼 승낙할 수 없네.”
“아버님은 아직도 옛날의 환상에 갇혀 있으세요. 선화씨의 말을 저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버님의 말씀을 이해 못하겠어요. 이제 통일조선은 너의 나라, 나의 나라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나라에요. 모두가 나라의 주인이고, 이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저는 우리 북쪽이 주장했던 사상과 서로를 갈라놓았던 성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어요. 아버님의 편견으로 우리를 갈라놓을 수는 없어요.”
“아니 이놈이, 그동안 자본주의의 물을 먹더니 단단히 변했구나. 주체사상을 팽개치고 여행사 나부랭이를 하는 놈이 이제는 못하는 말이 없구나.”
“아버님 제가 주체사상을 팽개친 게 아니고, 우리가 과거에 주장해왔던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거예요.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법 앞에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지금의 통일조선이라고 생각해요. 선화씨는 우리 집안의 보배가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저희는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이 결혼 승낙해주세요.”
“여보,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말고 정식이의 결혼을 승낙해주세요. 우리 선화씨가 너무 참하고 당차잖아요. 나는 선화씨가 우리 정식이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확신해요. 그리고 집안의 보배가 될 것 같고요.”
“이 여편네도 이제는 완전히 물들었구먼.”
“여보 물들은 게 아니고, 통일 후 4년 동안 우리나라가 얼마나 달라졌나보세요. 당신이 과거에 당의 부부장을 했을 때도 어디 마음 놓고 이야기나 할 수 있었나요? 그러나 지금은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행동할 수 있지, 이제는 쌀밥에 고깃국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 생전 입어보지 못한 이런 멋쟁이 옷도 입을 수 있지 않아요. 과거 공화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을 지금은 평상시 일처럼 하고 살잖아요. 뭐가 그리 좋다고 아직도 과거의 이념과 사상을 못 잊고 그래요. 나는 선화씨를 며느리로 대환영이에요.”
“허허, 우리 집안이 다 미쳐가는구먼.”
“우리가 미쳐가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이러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김정식의 아버지는 완고함을 견지했다.
그러나 몇 달 후의 두 번째 방문에는 조금 태도를 바꾸더니, 일 년이 지난 세 번째 방문에서는 못이기는 척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했다. 통일조선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과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을 조금씩 인정하는 자세는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었다.
출신과 성분을 뛰어넘은 두 사람은 결혼을 검소하게 하되, 역사적인 장소를 택해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란봉 근처에 있는 모란봉예식장을 선택했다. 결혼을 축하하느라 10월의 하늘은 한없이 맑았고, 선들바람은 하객의 마음을 풍성하게 적셨다. 강민국과 김지혜도 5년의 시차를 두고 통일의 날에 결혼하는 두 사람을 마음껏 축하했다. 모든 국민들이 함께 축하한 통일의 날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계속> hjy20813@naver.com
*필자/하정열.시인. 화가. 예비역 소장. 북한학 박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