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1947년 3월 12일,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그대상이 될 수 있는 국가들에게 경제,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는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을 발표하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로서 우선 “유럽부흥계획”(European Recovery Progrm, ERP), 일명 “마샬플랜”이라는 원조계획을 실행하였다. “마샬플랜”은 유럽원조계획이었지만, 실제로는 공산화 위험이 있는 모든 지역과 국가에 원조하였다. 1948년 8월에 정부를 수립했던 대한민국도 이 “마샬플랜” 원조의 대상 국가였다. 또한 트루먼은 집단적이고 다자적인 안보동맹기구인 NATO를 결성하여 “구 소련”과 공산주의의 팽창에 대한 군사적 봉쇄도 동시에 가동하였다. 결국 트루먼의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은 유럽에서 아시아의 극동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할 수 있었고,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구획을 확실하게 나누었으며, 이로 인한 양 진영의 대립구도는 이후 50여 년간 지속되었다.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2017년, 이제는 중국이 군사, 경제적 팽창의 시동을 걸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시진핑은 이미 2013년 3월 국가주석에 취임한 이후부터 “군사굴기”(軍事崛起)라는 군사대국화와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경제적 영향력 팽창을 중국의 미래라고 주창하며, 시야를 태평양과 중앙아시아로 확장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2016년 1월에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를 설립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 경제, 금융 질서를 흔들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시진핑은 중국 내부적으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했으며, 어쩌면 러시아의 푸틴과 같은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권력자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시진핑은 자신이 선전하는 “중국몽”(中國夢)과 시진핑 자신의 꿈(夢)을 오버랩 시켜가고 있는 듯하다.
우선 태평양으로의 군사적 팽창, 즉 “군사굴기”는 태평양과 동아시아에서 1953년 이후 유지되어왔던 군사적 세력균형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로서 미국에 대한 사실상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대일로”라는 신실크로드 구상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모든 지역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중국의 시도는 러시아와는 "독립국가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CIS)으로 결속되어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러시아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이 지역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러시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어쩌면 중국은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경쟁 국가들에게 직접적인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의 팽창에 대한 봉쇄는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러시아까지도 반드시 필요한 상황으로 전개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시진핑의 장밋빛 구상에 암초로 등장한 것이 바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그 어느 국가보다도 거부감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주변지역과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팽창하려는 중국이 북 핵을 막지 못하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설상가상 북한이 미국과 일대일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중국의 영향권에서 빠져나간다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953년 이후 현재까지 휴전체제의 국제법적 지분을 갖고,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힘의 균형”을 유지해 왔던 중국으로서는 김정은 정권이 목적하는 “북-미 평화조약”을 통한 휴전체제의 종식과정에서 중국이 “패싱”당하고, 국제법적 지분도 상실하는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대국을 자칭하며 주변지역으로 팽창을 시도하는 중국에게 오히려 영향력의 축소라는 충격적인 망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제 핵탄두 ICBM 시험이라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제까지의 과정에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막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독점하려는 짧은 소견으로 일관하면서도 전혀 북한정권을 통제하지 못했고, 오히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도와준 결과만을 초래했다. 지금 시점에서 북핵과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김정은 참수 외엔 방법이 없지만, 이 마저도 북한의 핵탄두 ICBM 시험이 성공한다면 가능성은 제로가 되기 때문에, 중국이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중국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거의 없어지고 있다.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는 꽃놀이 패를 쥐고 있다고 보여 진다. 만약에 북한정권이 핵탄두 ICBM을 성공한다면, 미국은 대북 강경노선을 포기하고 북한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다. “북-미 평화조약”은 미국에게는 중국과의 완충지대를 한반도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좋은 카드이다. 또한 “북-미 평화조약”은 휴전체제가 새로운 체제인 “평화체제”로 전환되면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국제법적 지분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 안보적 영향력을 소멸시킬 수 있다. 미국은 애초에 북핵의 폐기를 1차 목적으로 삼았지만, 이것이 실패하더라도 체제를 전환시켜서 중국의 팽창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만약에 체제가 전환된다면, 그 다음 단계로 다자간 군사적 동맹을 가능하게 하는 개헌을 통과시킨 후의 일본과 휴전조약의 굴레에서 벗어난 대한민국, 필리핀 등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NATO와 유사한 다자간 군사동맹 기구를 창설하여 “군사굴기”를 통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하려고 할 것이다. 트럼프의 중국봉쇄 전략은 70여년전 트류먼이 NATO 창설하고, 이어진 바그다드 조약기구, SEATO의 창설 그리고 1958~59년으로 추정되는 한반도의 전술핵 배치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걸쳐 공산주의 팽창을 봉쇄하는 포위망을 구축했던 방식과 유사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 출발점일 수 있는 일본의 개헌의 배후에 미국이 존재한다는 추측도 가능해진다.
또한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트럼프가 중국을 방문한 11월 8일 대 중국 금융제재 법(일명 웜비어 법)을 통과시키고, 미-중 간 무역의 불균형을 빌미로 중국의 대미수출에 제약을 가하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적 봉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다시 말해 미국은 북핵과 미사일을 빌미로 중국에 대한 다양한 경제적 제재를 시작했지만, 사실 그 목적이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시진핑의 “중국몽”을 출발부터 봉쇄하는 전략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시진핑의 “일대일로”라는 팽창전략은 미국의 명분 있는 견제로 인하여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미국과 중국 간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특히 중국 은행들의 금융거래 제한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중국의 국제적 위상과 실제적 파워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 또한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러시아도 중앙아시아에서 자국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봉쇄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일본의 아베는 미국의 중국봉쇄 전략을 이미 알아차리고 봉쇄의 범위를 태평양에 국한하지 말고 인도양까지 확대하자고 트럼프에게 제안했다. 중국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의 전방위적 "중국 봉쇄"는 "군사굴기", "일대일로"로 표현되는 시진핑의 "중국몽"을 그야말로 출발도 하기 전에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미국에게 중국을 봉쇄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트럼프가 차근차근 전개시키고 있는 대 중국 봉쇄전략은 1947년 트루먼의 봉쇄정책과 그 대상과 당대의 국제적 환경이 다르다. 트루먼은 마샬플랜 원조를 통해 동맹국에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쏟아 부었지만, 트럼프는 무역수지 불균형을 이유로 일본과 대한민국과의 FTA 재협상을 통해 반대로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 했다는 차이점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트루먼-트럼프 봉쇄전략의 공통점은 미국이 역내 헤게모니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핵심이익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1947년에는 봉쇄의 대상이 소련이었고, 2017년에는 그 대상이 중국인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이미 미국의 봉쇄전략으로 인하여 진퇴양난에 빠져들고 있다. 갑작스런 한-중관계 복원과 사드배치 인정 등은 시진핑이 트럼프를 만나기 전에 ‘어떤 우호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어떤 우호적 환경’이란 무엇일까? 중국은 미국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판’에서 자국의 지분이나 기득권을 최소한이라도 유지하길 원할 것이고, 이를 트럼프에게 보장받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이를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오늘 시진핑은 자금성을 통째로 비워두고 트럼프를 황제처럼 영접했다고 한다. 그런데 트럼프의 중국방문과 동시에 미국의 3개 항모전단의 동해 상 합동훈련이 발표되었다. 또한 3개의 항모전단이 동중국해를 거쳐 한반도에 전개되는 상황에서도 중국은 어떠한 대응이나 비판도 못하고 구경만 했다. 중국이 야심차게 외쳤던 "군사굴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이제 시진핑은 미국의 "중국 봉쇄"에 기회를 제공한 북한문제에서 어떤 출구전략을 가지고 있을까? 그래서 트럼프와 시진핑의 회담 결과가 기다려진다. 어쩌면 동아시아가 새 질서로 전환되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권오중 (diakonie3951@gmail.com).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Philipps- Universität Marburg) 철학박사 (현대사/정치학 전공). 서울대학교 교육종합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 민주평통 정치외교분과 상임위원 역임. 한국외대 등 다수 대학 출강. 현재 사단법인 외교국방연구소 연구실장. 칼럼니스트.